[박숙희의 茶이야기]용정차, 그 순수의 향을 그리며
[박숙희의 茶이야기]용정차, 그 순수의 향을 그리며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12.06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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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차문화협회 박숙희 충북지부장

[한국차문화협회 박숙희 충북지부장] 중국 상해에서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아름다운 도시 항주에 도착한다. 중국 10대 명차의 하나인 ‘용정차’가 생산되는 곳이다. 맛과 향기가 우리 녹차와 비슷하여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차이다.

청나라 강희황제는 항주에 행궁을 건립하였고, 건륭황제는 서호 사봉산 아래 주변을 순방하다가 그 지역 스님이 우린 차를 마시며 피곤을 풀었다. 차에 반해 기분이 좋아진 황제는 절 앞의 18그루 차나무의 잎을 따던 중, 황태후의 병환 소식에 놀라 무심히 소매 속에 차 잎을 넣고 궁으로 돌아왔다.

용정차 밭

황제는 자신이 피곤을 풀었던 기억을 되살려 소매 속 찻잎을 끓여 황태후에게 올렸다. 용정차를 마신 황태후 또한 병이 나아 황제는 스님의 차나무 18그루를 어차로 지정하여 특별히 관리하게 했다. 그 후부터 18그루 어차수(御茶樹)는 용정차의 높은 명성의 상징이 되었고 오늘날 중국 절강성(浙江省)의 최고 명물 중의 하나로 자리 잡게 하였다.

온종일 커다란 뜨거운 솥에서 찻잎을 손으로 눌러주며 만드는 용정차는 1시간에 100그램 만드는 것이 고작이다. 짙푸른 녹빛의 광택, 통통하면서 납작한 모양새가 눈길을 끈다. 값도 비싼 편이어서 여행길에 구입하기도 만만치 않다.

용정차 수확 모습

투명한 유리잔에 찻잎을 넣고 끓인 물을 부으면 잎들이 일제히 일어서 위로 떠오른다. 살아있는 듯 생동하며 푸른 대숲이 삽시간에 피어나는 듯하다. 난초향을 맡으며 한 모금 머금으면 상쾌한 맛이 담백하고 신선하다.

1994년 절강대학교 차학과의 차문화연수회에 참여했을 때 처음 용정의 18그루 어차수를 보러 갔었다. 바싹 매말라 있는 척박한 땅 언저리에 듬성듬성 18그루의 차나무는 황제의 칭송이 무색하리만큼 방치되어 있었다. 안내를 맡았던 절강대학교 교수는 자랑스럽게 흥분된 어조로 열심히 소개의 말을 했지만 벼슬을 얻은 차나무라고 인정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였었다.

중국 어차원

 재작년 중국과의 차문화교류전이 있어 회원들과 용정의 차밭을 들르게 되었다. 산등성이에 층층이 푸른 잎들이 들어찬 싱그러운 차밭은 용정차의 명성을 대변하고 있었다. 자동차를 타고 더 들어가니 18그루 어차수라는 팻말과 함께 입장료 안내판이 보였다. 90년대 초 보았던 척박한 모습과 달리 한곳에 오밀조밀하게 모아 울타리를 치고 관광명소로 만들어 관광객들의 호객행위의 중심이 되어 있는 어차수는 왠지 씁쓸하고 어색했다.

무엇이든 본연의 모습이 아름답다. 처음 띄엄띄엄 여기저기 늘어선 어차수를 생각하며 다듬지 않은 순박한 용정 산촌의, 조금은 가난해 보이던 모습을 더듬어 본다. 건륭황제가 어설프게 차나무 잎을 따던 모습을 상상하며 척박한 산 속의 차나무의 고귀함을 느껴본다.

용정문다

촘촘히 모아져 윤기 흐르게 다듬어진 새로운 어차수는 마치 성형한 친구의 얼굴을 대하는 어색함이 다가들었다. 사람에게 초심, 처음의 마음이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뜻밖에 갖게 된 재물이나 권력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을 갖는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유리컵 속에 납작한 푸른 광택의 용정차를 넣고 끓은 물을 붓는다. 찻잎들이 춤을 추며 열을 맞추며 일어선다. 싱그러운 차향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한 해를 정리하며, 새해 우리의 앞날도 이 차처럼 싱그럽기를 기대해 본다.

 

 박 숙 희 한국차문화협회 충북지부장

  

  ▶ 충북대 평생교육원 인성차문화예절지도사 강사

  ▶ 한문교육학 박사

  ▶ 서일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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