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와 한국의 자존
사드와 한국의 자존
  • 조창완 <차이나리뷰> 편집장
  • 승인 2017.03.23 10: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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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사이에 거대한 블랙홀이 생겼다. 양국을 오가던 상품과 서비스는 물론, 문화와 인적교류, 외교, 미래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삼킬지 가늠할 수 없다. 이미 수십만 ‘유커(遊客)’의 방한이 취소되었고, 중국에서 통관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역도 예측을 할 수 없게 됐다. 중간재 수출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한 사안을 놓고 단결하는 중국의 국민성을 감안할 때, 피해를 볼지라도 한국을 대체할 곳을 찾을 가능성이 많다.

이런 상황이 매우 즐거운 쪽도 있다. 일본이다. 한국에 오는 중국 관광객은 대부분 일본으로 행선지를 바꾸고, 중국으로 가려던 한국 관광객도 일본으로 발길을 돌린다. 한 배에 수천 명이 타고 한국에서 쇼핑하던 크루즈 관광객들이 일본에서 물건을 사니, 일본으로서는 한국전쟁에 버금가는 호기라고 느낄 정도다. 중간재 수입의 가장 큰 수혜국도 일본이나 대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총리가 중국 주석을 만나 사드 배치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한 후 10일 만에 전격적으로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 한국 외교의 ‘급변침’에 적응할 국가는 없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자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해 같이 손을 흔들었다가 몇 달 후 자국이 두 나라 우호의 마지노선이라고 했던 전략무기체제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제도의 통제가 무섭지만 더 무서운 것은 사람들 간에 퍼지는 불안한 기운이다. 3월 28일 사드 부지 인도 결정 이후 중국은 곧바로 관광업계 관계자를 불러, 한국관광 자제를 지시했다. 그로부터 3일 만에 중국 대형여행사나 온라인여행사에서 한국여행 상품이나 롯데 관련 숙박이나 쇼핑페이지는 사라졌다. 우리 정부는 단체관광객 유커 대신에 개별관광객인 ‘싼커(散客)’를 유치한다고 하지만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견해다.

몇 년 전 베이징의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으로 한 사람이 적발됐다. 공안국에 온 운전자는 음주사실을 부인했다. 이후 재판정에 갔을 때 이 운전자는 술집에서 술을 마신 모습부터 차를 타는 모습, 운전하는 경로 등 자신의 동선 대부분을 시청해야 했다. 국가가 개인의 신용점수제를 도입하는 중국에서 사생활이란 의미가 없다. 이런 나라에서 개별적으로 한국 여행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한국에 대한 ‘배제’는 이미 현실이 됐다. 보아오 포럼에 초청됐던 우리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게 오지 말라고 어깃장을 놓고, 일대일로 포럼에 한국은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다. 보아오 포럼은 중국의 가치를 전시하는 현장이고, 일대일로 포럼은 시진핑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미래 사업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상황인식이다. 너무 안이하다. 혹자는 이번 사태를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계기로 삼자고 말한다. 또 한국은 중국이 해외에 수출하는 중간재를 수출함으로 중국의 피해도 많아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커 대신에 동남아 등 다른 지역의 관광객을 유치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나라를 위해서 어떤 피해라도 감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국민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현장에서 벌어질 수많은 실업과 다가올 수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동정심은 전혀 없다. 그리고 이런 희생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일까. G2를 넘어 G1이 될 수 있는 거대한 국가, 특히 바로 옆에 붙어 엄청난 영향을 주고받는 나라와 척을 지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사드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7월, 중국에서 사드는 ‘아시아판 쿠바 미사일 사태’라는 비유가 등장했다. 1962년 10월 소련이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미사일을 들여놓으려 하자 케네디 정부가 완강하게 대항해 철회시킨 일이다. 중국은 사드를 당시 소련이 들여놓으려 했던 미사일로 인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선거와 사드배치, 트럼프 정부의 동아시아 정책, 미운 시누이 일본의 태도, 중국의 새로운 상무위원회 구성 등 올 한해, 당대 역사의 가장 치열한 흐름을 겪을 것이다. 비견하자면 구한말 상황과 유사하다. 조선은 정치나 외교에 실패해 나라를 잃었다. 그 치욕의 시대에 기득권들은 친일로 변신해 호의호식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반면 민초들은 하시마섬과 사할린의 노동자로, 남국 어딘가에 위안부로 끌려가야 했다. 내 아이가 그 역사의 수레바퀴에 잔인하게 깔리지 않게 하려면 냉철한 정신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한다.

 

조창완 중국전문 컨설턴트/
<차이나리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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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진료 2017-03-23 18:02:23
닭정권의 동북아 외교정책은 뽕 맞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