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성난' 산부인과 의사들 서울역으로… 궐기대회 D-1
[이슈분석] '성난' 산부인과 의사들 서울역으로… 궐기대회 D-1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7.04.28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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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불가항력적 사고 처벌은 부당”
대선 앞둔 정치권도 ‘예의주시’
집회 규모 1000여 명… 충북은 50명 참여 예상

편집자 주=산부인과 의사들의 화가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7일 자궁 내 태아사망에 대한 과실이 의사에게 있다는 인천지방법원의 판결이 나면서다. 이로 인해 진료과목과 지역을 막론하고 이 같은 판결을 규탄, 비난하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이젠 행동에 나선다. 29일 오후 6시 서울역 광장에서 산부인과를 포함한 전국 의사들이 모여 궐기대회를 연다. 충북지역 의사들도 일부 참여한다. 이번 궐기대회를 계기로 들불처럼 번지는 규탄 분위기 속에 제도 개선의 반전을 이끌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사 내용과는 무관.

불가항력적 사고 처벌은 부당

이번 이슈의 핵심은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처벌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고인데, 의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수술 등을 하는 의사들 사이에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듯하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만연해 있다.

문제가 된 당시 사고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2014년 11월 24일 오후 10시쯤 임신 40주차인 독일인 산모 A씨가 분만을 위해 인천지역의 한 산부인과를 찾았다. 다음날 오전 6시 15분쯤부터 3시간 동안 태아의 심박동수가 급격하게 곤두박질쳤다. 이런 증세가 무려 5차례나 발생했다고 전해졌다. 이후 태아의 심박동수는 다시 안정을 찾았고, 산모는 오후 2시 30분쯤 진통을 시작했다.

산부인과 의사는 약 2시간 뒤 통증 완화를 위한 무통주사를 놨고, 태아의 심박동수를 검사했다. 오후 6시쯤 산모가 다시 통증을 호소해 갔더니, 태아는 이미 죽어있었다. 당시 산모에게 부착했던 태아 심박동수 검사 감지기는 산모의 통증 호소 등을 이유로 제거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인천지방법원 형사7단독(판사 이학승)은 2017년 4월 7일 업무상과실치상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여의사에게 금고 8개월형을 선고했다. 산모에게 무통주사 후 1시간 30분 동안 산모와 태아를 돌보지 않고 방치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게다가 세심하게 관찰했다면 제왕절개 수술 등 태아가 사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판시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즉각 입장을 발표했다. 태아의 심박동수를 1시간 30분간 측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산부인과 의사가 태아를 죽게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분만 전 과정에서 태아 심박동수를 제대로 측정하지 않았다고 형사처벌까지 한다면 의료인은 항상 분만 전 과정에서 산모 옆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므로 이는 현실적이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며 “자궁 내 태아 사망은 불가항력적인 것이기에 법원의 금고형은 지나치다”고 주장했다.

의료계 곳곳에서도 성명서가 쏟아졌다. 지난 13일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를 시작으로 19일 비뇨기과의사회, 21일 흉부외과의사회와 경북도의사회, 24일 전남의사회, 25일 전국의사총연합, 26일 경남도의사회와 경기도의사회, 27일 대한의원협회와 안산시의사회 등이 강한 규탄을 했다.

전국의사총연합도 성명서를 통해 “분만과정 중 과실을 이유로 의사를 교도소로 수감시키는 것은 의료행위의 본질을 무시하는 처사로 대한민국에서 의사로서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일”이라며 “이는 대한민국 의사로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판사의 폭거”라고 비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대응팀을 꾸리고 항소심에서 법률 지원을 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도 회원들을 대상으로 탄원서 서명운동을 한다.

2006년 일본 오노병원 의사 체포사건 유사 사례

의료계는 이번 사건을 지난 2006년 일본 오노병원에서 발생한 의사 체포사건과 비교하고 있다. 분만 후 태반 박리과정에서 산모가 과다출혈로 사망하자, 사법당국이 의사에게 책임을 물어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당시 일본 의사들은 이 같은 결정에 강력 항의했다. 태반유착은 치료 난이도가 높아 위험한데다, 산부인과 의사 부족이란 상황에서 헌신한 의사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었다.

사건 발생 2년 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불가항력적 사망 사고를 인정받은 것이다.

현재 의료계는 이 같은 사례를 들어 이번 판결을 규탄하고, 향후 상급법원에서의 합리적인 판단을 촉구하고 있다.

대선 앞둔 정치권도 ‘예의주시’

대선을 앞둔 정치권도 의료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날 박인숙(의사 출신) 바른정당 의원,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 김순례(약사 출신) 자유한국당 의원 등 여러 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날 의료계의 얘기를 듣고 해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왼쪽부터 박인순 바른정당 의원,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

앞서 지난 21일 대한의사협회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이 문제에 대해 협조를 요청했다.

이날 자리는 의협이 마련한 보건의료정책 25개 어젠다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사안이 사안인만큼 자연스럽게 언급됐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법원 판결에 대한 반대는 어렵지만, 다만 의료행위에 대한 불가항력적 사고의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달라”며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환자와 의사를 국가에서 보호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양승조 위원장은 “판결문을 봐야겠지만, 아마 의사의 과실을 중과실로 보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판결은 절대 일반화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회 규모 1000여 명… 충북은 50명 참여 예상

이번 궐기대회에는 전국 1000여 명의 의사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16개 시‧도의사회 회장단을 비롯, 의원협회, 전국의사총연합회 등 의료계 관련 단체가 대거 모일 예정이다.

충북에서는 50여 명의 의사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오후 9시쯤 하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치석 청주시의사회장은 세종경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주말 진료를 끝낸 뒤 오후 5시쯤 KTX오송역에서 서울행 기차에 오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산부인과 의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렇기 때문에 참여 열기가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사고 보상재원 분담 연장 문제, 재논의될까

29일 궐기대회에서 지난해 산부인과계를 충격에 빠트렸던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의 개선 논의가 이뤄질 지도 주목된다.

이 제도는 당초 의료진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산모나 신생아가 사망하는 등 의도치 않게 발생한 의료사고를 보상함으로써 의료진과 환자의 고충을 해결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의료인 무과실이 판단된 사건에 한해 의료사고보상심의위의 심의 결과에 따라 보상금이 결정된다. 보상에 쓰일 재원은 보건의료기관 개설자가 30% 부담토록 했다.

의료중재원에 따르면 2013년 4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 시행 이후 11건에 대해 3억1500만원이 지급됐다.

연도별로는 2014년에는 4건, 2015년에는 7건에 대해 각각 1억2000만원, 1억9500만원의 보상이 이뤄졌다.

그러나 의료진 과실이 없음에도 분담금을 내는 것에 대해 의료계는 반발해왔다.

안치석 회장.

2016년 5월 11일 안치석 청주시의사회장은 세종경제뉴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가뜩이나 어려운 산부인과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 현상으로 사회 곳곳에서 타격을 받고 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산부인과”라고 말했다.

그는 "분만건수가 눈에 띄게 줄면서 경영상태가 열악한 산부인과는 문을 닫는 등 흉흉한 소식이 들려오는 이 시점에 이 같은 정부의 결정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고 호소했다.

안 회장은 과실이 없는 분만 사고에 대해서는 배상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의사의 과실이 없는 사고를 의사가 책임지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국가 주도하에 시행되고 있는 의료분쟁조정법 상 보상을 해주려면 국가가 100%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해 잘못이 없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보상재원을 분담시키는 것을 거부한다"며 "잘못된 법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권희 회장.

이날 이뤄진 인터뷰에서 전권희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충북지회장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 회장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배상에 있어 단지 분만을 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분만 실적이 있는 의사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과실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어떻게 자신감을 갖고 환자를 돌보겠느냐"며 "의사의 실수로 문제가 된 사고에는 의사가 책임을 지는 건 맞지만, 불가항력적인 문제도 의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근거 부족을 이유로 재검토 기한을 3년 연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이 제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후배 산부인과 의사는커녕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만 인프라 붕괴를 가속시킬 게 뻔하다"고 말했다.

또 "저출산에 임산부 고령화까지 겹친 우리나라 상황에서 분담금 부과를 지속하는 행위는 영세한 산부인과의원의 고위험 임산부 진료기피, 분만 포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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