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디렉터가 된 법대생
웹디렉터가 된 법대생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7.06.26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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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의 동행(同行) - ⑫최승균 광장 대표

편집자 주=지난 1994년 창립한 (사)중소기업융합충북연합회는 현재 16개 교류회, 총 350여 개 회원사로 구성돼 있다. 이(異)업종간 자주적이며 자유로운 교류활동을 통해 역량을 강화한다는 게 특징이다. 회원사간 업종이 다르다 보니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세종경제뉴스는 (사)중소기업융합충북연합회 회원사를 집중 조명한다. 열두 번째 주인공은 최승균 광장 대표다.

1990년대 초 어느 날. PC통신이 가정에 급속히 보급됐다. 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 등이 유행하면서 이른바 ‘X세대’는 온라인 세상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표출했다. 10년 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됐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친구가 되고, 게임을 하고, 물건을 팔았다. 자본도 송두리째 인터넷에 진입했다. 언론에서도 미래 먹거리는 ‘인터넷에 있다’며 연일 보도했다.

최승균 광장 대표. / 사진=이주현 기자

당시 20대 중반이던 최승균(45) 광장 대표는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주목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만 잘 타면, 번듯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판단은 바로 섰지만, 결정하기는 힘들었다. 아무래도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충북대학교 법과대학에 다니고 있던 그는 고민에 빠졌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느냐, 아니면 공무원 시험 준비는 하느냐.’를 두고 말이다.

2006년. 최 대표는 제3의 선택을 하게 된다. 8000만 원을 들고 청주시 봉명동에서 둥지를 틀었다. 웹디자이너로서 사회에 명함을 내밀었다. 막상 도전은 했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전공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려니 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공부해야 했다. 그는 밤낮없이 일했고,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만났다.

최 대표는 웹사이트 구축, 웹프로그램 개발, 웹프로모션 등을 주로 했다. 창업 초기에는 고객에게 보여줄 실적이 없어 수주가 힘들었다. 그러나 실적이 쌓이면서 영업은 수월해졌다. 현재 그가 관리하는 고객사만 400곳이 넘는다.

2012년에는 갓 출범한 세종시의 네트워크 구축사업을 일부 맡으면서 지역사회에 이름을 알렸다. 이 기간 30개쯤 거래를 성사시킨 것으로 그는 기억하고 있다. 당시 매출액은 약 3억 원쯤이었다.

현재 그는 마케팅도 하고 있다.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유통 채널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 그 대상이다. 인터넷 플랫폼을 만들어 제품 홍보, 판매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직함은 중소기업융합충북연합회 창조융합교류회 총무다. 4년 전 오성진 전 창조융합교류회장의 추천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2대 회장인 심상학 태성HR 대표와 함께 창조융합교류회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 군말 없이 응원해준 아내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들(11)과 딸(4)도 제 삶의 원동력이고요. 제 가정 이론이 하나 있는데, 아내한테 잘하는 겁니다. 아내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하고, 가정에도 평화가 오지요. 사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사)중소기업융합충북연합회 교류회 가입 문의는 043-230-6877.

이메일은 eupkorea0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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