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해직과 암투병...흐느끼는 기타선율
두 번의 해직과 암투병...흐느끼는 기타선율
  • 박상철 기자
  • 승인 2018.02.05 0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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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쌓아온 연주 경력과 굴곡진 삶이 빚어낸 박종호 씨의 연주 화제
기타 하나 달랑 메고 스페인 여행...11월엔 청주예술의전당서 공연 예정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민중가요 ‘오월의 노래’-

페이스북에서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클래식 기타리스트가 있다. 기타 하나 달랑 메고 기타의 고향 스페인 여행을 떠나 즉석 공연 영상을 올리는가 하면, 지난 1월 말에는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의 초대로 세종시 바보주막에서 미니 연주회를 갖기도 한 박종호 씨가 그 사람이다. 게시 글에서 최교진 교육감을 친근하게 ‘공주대(구 공주사범대) 선배’라고 호칭하는 것을 보면 그는 이미 퇴임한 전직 교사이거나 퇴임을 앞둔 원로교사일 것이다.

그런데 이날 그가 연주한 곡은 프랑스 샹송 가수 미셸 폴나레프(Michel Polnareff)가 1970년대에 부른 ‘누가 내 할머니를 죽였나(Qui a tue grand maman)’였다. 자신이 정성들여 가꾼 정원이 도시계획으로 망가지는 것에 반대하다 목숨을 거둔 루시엥 모리스를 추모하는 곡이다. 슬픈 선율을 귀담아 듣다 보면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한 ‘오월의 노래’의 원곡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시대를 관통해 온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노래다. 그는 1절에선 원곡을 연주하고 2절에는 원곡을 번안한 '5월의 노래'를 편곡 삽입해 음악 예술로서의 '5월의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편집자 주

기타리스트로 제2의 삶을 살아가는 박종호 씨 / 사진=박상철

1980년 5월, 신군부에 저항한 광주시민들의 뜨거운 민중항쟁. 당시 ‘지하베스트셀러’라 불리며 5·18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기록한 황석영 작가의 저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평범한 교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박종호(62) 기타리스트. 그의 주름진 손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과서가 아닌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기타가 쥐어져 있다. 애인처럼 꼭 끌어안고 신체 중 가장 뜨거운 심장 가까이서 소리 내는 악기. 뜨거웠던 지난날의 기억을 악보삼아 오늘도 희망을 연주한다.

지난 40여 년간 아마추어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박종호 기타리스트. 그의 전 직업은 바로 국어교사다. 1980년, 단양에서 교사로서 첫발을 뗀 그는 여느 평범한 교사와 마찬가지로 교직 생활을 이어갔다.

박 기타리스트가 광주를 직접 방문했을 당시의 상황을 말하고 있다. / 사진=박상철

그러던 1987년 어느 날 우연히 접한 황석영 작가의 광주항쟁을 기록한 한권 책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책을 접한 그날은 그가 의식화교사로 전환하게 된 변곡점이 됐다. 연휴였던 그해 현충일. 당장 전라도 광주 망월동으로 향했다.

스산했다. 여기저기 즐비한 공동묘지에 걸린 한 장의 사진이 그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힘없이 쓰러진 여중생. 그가 입고 있던 흰 교복 셔츠는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참혹함에 고개를 떨궜다. 당시 무극중학교에서 1학년을 가르쳤던 그의 두 뺨을 타고 흘린 눈물은 어느새 당시의 여중생 교복의 피처럼 땅을 흥건히 적셨다.

잊지 못할 그날의 기억을 간직한 채 돌아온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바람이 불었고 사학민주화와 교육민주화 심지에도 불씨를 댕긴다. 자연스레 전국적인 조직의 필요성도 제기됐고, 마침내 서울 한신대학교에서 700여명의 교사가 모인 가운데 ‘전국교사협의회’ 창립식이 열렸다. 그도 그렇게 전교협 일원으로 학생들에게 참된 교육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쳤다.

1981년 단양 영춘중학교 봄소풍 당시의 모습. 가운데서 풀피리 부는 박종호 교사 / 사진=박종호

1980년대 후반 군사 독재 정권이 만들어낸 교과서의 왜곡된 내용을 바로잡아 올바른 교육을 하고자 당시 도종환, 김병우, 박종호 등 몇몇 교사들과 의기투합해 ‘충북국어교사모임’을 만들어 학생들의 올바른 가치관 확립에 앞장섰다.

교편을 잡은 지 12년차인 1992년, 해직교사 복직운동을 하다 석연찮은 이유로 첫 번째 해직을 당하게 된다. 이후 생계가 막막했던 그는 대입입시학원과 논술학원 강사로 활동했다. 그렇게 7여년의 시간을 보냈다. 90년대 말, 다시 학교로 복직해 교탁 앞에 섰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교단에 선 그의 교육철학은 딱 두 가지. 정년까지 평교사 신분으로 매년 학급의 담임을 맡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교조 교사라는 딱지는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결국 복직 10개월 만에 두 번째 해직의 쓴맛을 경험한다. 배운 거라곤 가르치는 것 뿐.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호구지책으로 논술학원 일을 시작했지만 그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렇게 술과 담배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기타는 애인처럼 꼭 끌어안고 신체 중 가장 뜨거운 심장 가까이서 소리 내는 악기라고 말하는 박종호 기타리스트 / 사진=박상철

피우고 마셨다. 그러던 2011년 5월18일.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비 오던 저녁, 술과 담배를 사기 위해 밖을 나서던 그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하늘이 도운 걸까? 교통사고로 입원한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신장암이 발견된 것이다.

초기에 발견돼 7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신장 하나를 적출하고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방탕한 생활은 변하지 않았다. 이후 1년 만에 또 다시 방광암이 재발돼 수술을 받았다. 두 번의 해직과 두 번의 암 수술 충격에 그는 육체적·정신적으로 망신창이가 됐다.

하루하루는 절망의 연속이었다. 알콜의존증까지 생겨 요양원 신세를 져야했던 그에게 찾아온 한줄기 희망의 빛은 바로 음악이었다. 기타 선율로 전하는 음악으로 암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고 싶었다.

청주시 오창에 위치한 '마록산방'의 모습 / 사진=박상철

그렇게 그는 지금의 청주시 오창의 작은 터에 2년의 시간을 투자해 ‘마록산방’이라는 자신 만의 공간을 직접 마련했다. 이곳은 암 환자들에게는 소통의 공간이요. 그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펼칠 수 있는 작은 공연장이었다. '마록산방(馬鹿山房)'이라는 당호는 고라니가 함께 하는 집이라는 뜻을 형상화한 것이며, 지록위마(指鹿爲馬)하는 무리들에 대한 경계의 뜻도 중의법으로 담았다고 한다.

두 번의 암을 이겨내며 그가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뉴스타트 충북동호회’를 창립했다. 뉴스타트(NEWSTART)는 암환자들의 모임으로 암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등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암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그가 개발한 ‘토마토캔닝’은 주문량이 쇄도할 정도로 소문이 자자하다. 직접 재배해 태양빛이 가장 좋은 6~7월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주원료로 만다는 토마토캔닝. 라이코팬이라는 항산화물질이 암을 억제하고 치유하는데 큰 역할을 해 암환자들에게는 인기가 좋다. 그의 삶과 토마토캔닝은 MBN ‘천기누설’ 100회 특집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항암효과가 뛰어난 토마토를 이용해 만든 토마토캔닝은 MBN ‘천기누설’ 100회 특집으로 방영되기도 하면서 암환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 사진=박종호

음악과 함께 제2의 삶을 사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이 작은 기타의 선율을 통해 지난 시대의 아픔을 표현해 현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어요. 왜곡된 정권에 저항한 노래인 민중의 노래를 저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편곡해 진짜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게 저의 앞으로 목표입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금(心琴)을 울린다는 말이 옛날엔 마음의 거문고를 올린다는 뜻이었다면, 이 시대에는 마음의 기타를 울리는 게 아니겠냐"며 환하게 웃었다.

12년의 짧은 교직 생활로 연금도 받을 수 없다. 별다른 수입도 없이 어느새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 출장 공연과 개인 레슨으로 근근히 생활하는 그의 통장 잔고는 항상 바닥. 그래도 그의 입가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그의 곁을 항상 지켜주는 부인과 기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부자라고 자부하는 박종호 기타리스트. 그의 기타소리는 그가 살아온 역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오늘도 ‘마록산방’을 가득 채운다.

2016년 박종호 클래식기타 콘서트 '古木에 피는 꽃2'에서 Le Primier Pas(첫 발자국)을 김대진 씨와 공연을 펼치는 모습. 오는 11월에는 '古木에 피는 꽃3'을 계획하고 있다. / 사진=박종호

한편 박종호 기타리스트는 오는 11월20일, ‘古木(고목)에 피는 꽃3’을 주제로 예술의 전당 소공연장에서 기타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시대의 아픔과 희망을 노래하다’와 ‘투쟁과 사랑’이라는 두 테마로 꾸며질 이번 공연에서는 20여곡의 아름다운 연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은 물론 지난 역사의 아픔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 박종호 기타리스트 공연 영상 : https://youtu.be/VjH2Fexah54

■ MBN ‘천기누설’ 100회 특집 '토마토캔닝' 방송본 https://youtu.be/Z5dcCdMki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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