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벽을 허물고 신과 소통하는 ‘잔치’
사람과 벽을 허물고 신과 소통하는 ‘잔치’
  • 김정희 진지박물관장
  • 승인 2018.06.0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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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과 공예, 이야기, 춤과 노래가 있는 ‘종합예술
이원기로회도.

잔칫날. 사전적 의미는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로 기록하고 있다. 민속학적인 의미를 더해 본다면 잔치는 사람과 사람의 벽을 허무는 행위이자 사람과 절대적인 신과 교감하는 종교적인 의식까지도 포함한다.

필자의 기억에 남겨진 잔칫날의 모습은 이러하다. 마당에 하얀 천막이 드리워지고 청사초롱이 달린다. 커다란 무쇠솥이 걸리고 각색의 전들이 구워진다.

아낙들의 웃음소리와 멍석위에 옹기종기 둘러 앉아 탁배기 한 사발 나누는 모습. 아이들은 덩달아 신이나 이곳, 저곳을 뛰어다닌다. 흥겨운 장구소리도, 배워 본 적 없지만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덩실덩실 춤사위도.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일상은 특정한 공간에 담기고 예술로 승화되었다. 옛 그림에 남겨진 잔칫날의 모습. 사람과 사람이 벽을 허무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은 영조가 51세가 되는 해인 1744년 9월 기로소(耆老所)의 입사를 기념하여 제작한 것으로 그림과 함께 행례(行禮)와 의절(儀節)을 기록한 것이다. 그 중 본소사연도(本所賜宴圖)는 기로소에서 가연을 즐기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음식을 차려놓고 각각의 소반에 상화(床花)를 꽂고 흥겨운 춤과 음악을 즐기는 모습, 잔칫날이다. 그 옛날의 기록에는 술잔을 들며 시(詩) 한 수 읊고, 또 한 잔 마시고 풍악을 울리고, 차분하게 차 한 잔을 나누며 잔치를 마무리한다. 사람이 어우러지는 잔치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잔칫날은 일상을 담고 있는 종합예술이자 전시장이다.

음식이 놓인 그릇, 모든 것들이 공예다. 공예는 일상의 또 다른 이름이라 말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잔치가 흥겨운 것은 사람이 중심이고 내가 중심이 되는 과정을 온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세종대왕이 축제라는 이름으로 청주 초정리에 행차한지 12년이 되었다. 1444년 2월 28일. 세종은 거가(車駕)라고 기록 된 연을 타고 왕비와 세자와 함께 처음으로 초정에 행차했다.

세종실록은 1444년(재위 26) 초수에 행궁을 짓고 같은 해 3월2일부터 4월30일까지 58일간, 그리고 같은 해 7월15일부터 9월 4일까지 59일 등 총 117일간 머물렀다고 적고 있다. 안질을 치료하면서 한글창제 작업의 마무리를 했던 곳, 초정약수에는 세종대왕의 꿈과 뜻이 담겨 있다.

얇은 비단천으로 몸을 감싸고 맵고 알싸한 초정약수 목욕물에 세종이 있다. 유모와 나이 많은 상궁이 시중을 들고, 오동나무 바가지와 큰 함지박, 조그만 물바가지, 놋대야, 의자, 무명수건이 놓여 있다. 바닥에 기름종이를 깔고, 팥으로 만든 비누를 칠하고, 초정약수 물이 그의 몸에 천천히 부어진다. 목욕을 마치고 무명으로 된 수건으로 몸을 닦고, 무릎까지 내려온 웃옷과 발끝을 덮는 하의를 입고 미소를 짓는 세종의 얼굴이 그려진다.

불현 듯 이승소(李承召 1422~1484)와 안평대군의 싯귀가 떠오른다.
 

“하늘과 땅이 서기(瑞氣)를 빚어 신령스런 샘이 나니

세조께서 이 해에 수레를 멈추었네

모든 풍류소리 임금 계신 곳에 들려옴을 맞이하고

다투어 고운 해가 해지는 곳에 목욕함을 우러러 보았도다. ” (이승소 “椒水” 중에서)


“봄날에 깃발을 펄럭이며 남쪽 지방으로 행차하시니

눈에 비친 향기들이 높이 아래로 매달렸도다.

조물주는 또한 우리 성군(聖君)을 자랑하니

오늘날에 와 서원 땅에 좋은 샘이 솟아났도다.” (안평대군 詩 중에서)

기사경회첩 중 본소사연도

15세기 즈음, 그 시대를 함께했던 그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한 나라의 음식은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역사와 생활이 배어 있다. 당시의 음식문화를 알 수 있는 문헌으로는 『산가요록(山家要綠)』이 있는데 산가(山家)는 일반인들이 사는 평범한 서민들의 집을 뜻한다. 필사본으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 된 농서이며, 그 중에서 음식 부분은 현존하는 식품서 중 최초의 음식고전이다.

1450년경 전순의(全循義)가 기록한 이 책에는 230여가지의 방대한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다. 전순의는 조선시대 세종~세조 연간에 활약하던 어의이자 식품전문가이다.

양조(釀造)부분에 정확한 계량 단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장(醬)담그는 방법에서는 메주(말장, 未醬)의 정확한 제조법을 밝혀주고 장을 만드는 오래된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7년∼1765년) 에는 청주 초정과 관련한 기록에 초정주(椒井酒)와 돼지고기와 내장을 함께 구운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세종대왕과 초정약수 잔칫날. 600년 전 백성을 생각하고 한글창제라는 큰일을 마무리하며 몸과 마음을 다스렸던 그의 마음을 어떻게 전달 할 수 있을까? 소박한 그릇에 세종의 음식을 담아내며 소통하고, 그의 꿈을 그려 본다. 세종, 초정수월래(椒井水越來) . 세종대왕, 초정수를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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