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노출된 응급실, 이대로 놔둘텐가?
폭력에 노출된 응급실, 이대로 놔둘텐가?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8.07.07 0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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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의 의료계 소식통 - 첫 번째 이야기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세종경제뉴스>에서 지역 의료계 소식을 담당하고 있는 이주현 기자입니다. 이달부터 월 1회 '이주현의 의료계 소식통'이라는 이름으로 이슈화된 의료계 소식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사실 위주의 보도를 기반으로 해석과 가공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글을 서비스하고자 합니다. 취재를 기반으로 충북을 포함한 전국에서 벌어진 다양한 의료계 이슈들을 정리할 것입니다.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게 제 바람입니다. 기사에 차마 담지 못한 얘기도 상황에 따라 전하고자 합니다. 딱딱한 기사의 틀을 과감하게 벗겠습니다.

의료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읽기 쉽고 거부감 들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제 판단이 유효하길 바라며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의료계 종사자들의 애정 어린 관심도 부탁합니다.

이번 주 의료계 키워드는 바로 ‘폭력’입니다. 7월 첫날부터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났지요.

지난 1일 전북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환자가 담당 의사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을 두고 전국의 의료인들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습니다. 이번 주 내내 회자되며 다른 이슈들을 집어삼켰죠.

저 역시 의사 지인이 보낸 당시 현장 영상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영상에서 한 남성은 의사와 몇 초간 대화를 나누다가 순식간에 팔꿈치와 주먹으로 의사의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풀스윙으로 말이죠. 대응하지 못하고 쓰러진 의사의 머리채를 움켜 쥔 남성은 또 한 번 얼굴을 향해 발차기를 합니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흥건합니다.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현장에 왔음에도 남성은 분이 안 풀렸는지 발차기를 해댑니다. 당시 술에 취해 있던 남성은 의사에게 진통제 등을 요구했지만 의사가 들어주지 않자 시비를 걸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보고 비웃었다며 이 같은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지요. 

저는 이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봤습니다. 응급실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지만 이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안전해야 할 응급실에서 의사는 보호받지 못했고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무심히 걸어오는 장면에서는 화가 나기도 했고요. 좀 더 빨리 달려와서 저지했으면 안 됐나,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그 이후의 상황은 더욱 섬뜩합니다. 남성은 피를 흘리고 있는 의사에게 "감옥에 갔다 와서 칼로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답니다. 이 같은 위협적인 발언에 의사는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다수의 언론보도를 접하고 비상식적인 행동들이 너무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의사는 폭행으로 인해 뇌진탕과 목뼈 염좌, 코뼈 골절 등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했습니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도 의사들의 공분을 사는데 한몫했습니다.

이 사건이 터진 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지역의사회와 학계, 의료계 단체 등에서 폭행 가해자의 엄중한 처벌 등을 촉구하는 성명을 연일 냈습니다. 폭행 현장이 담긴 동영상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국민적 공분도 함께 샀고요. 지난 4일 잠깐이나마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한 것을 보더라도 얼마나 사회적 이슈가 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전주지법 군산지원이 6일 사안이 중대하고 재범,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응급실 내 폭력사건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법이 강화됐다지만 이런 일들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근 충북에서 벌어진 사건만 해도 수두룩합니다. 지난 2017년 12월 18일 청주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환자에게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했었죠. 당시 환자는 고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같은 해 4월 13일 또 다른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임신 9개월째인 응급구조사가 얼굴 부분을 환자에게 수차례 맞았지만,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주변 사람들은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응급실 직원들이 폭력을 휘두른 남성을 제압하면서 비로소 주먹질은 멈췄죠. 다행히 뱃속의 아이는 무사한 것으로 전해져 한시름 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2013년 3월 28일 청주 모 병원 응급실에서는 손을 다친 환자가 치료를 빨리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의 허벅지를 발로 차고 얼굴을 때린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청주지방법원은 폭력을 행사한 환자에게 300만 원의 벌금형을 판결했었고요. 이 외에도 이런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법이 약해서 그런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2조 및 제60조에 따르면 응급실 폭행, 응급의료방해 및 기물파괴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입니다. 폭행, 협박 등의 방법으로 응급의료를 방해하는 행위는 형법의 폭행죄와 협박죄, 업무방해죄보다 높은 형량으로 처벌됩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의료계에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때문에 응급실 폭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 사회는 너무나 관대하다는 게 다수의 생각입니다.

이 탓에 응급실 의사들이 공권력을 믿고 진료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경찰의 미온적인 대처와 사범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로 의료기관 내 폭력사건이 줄지 않고 있는 점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다음은 충북지역 의사들의 주장입니다.

안치석 충북도의사회장은 <세종경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응급실 의사와 의료진에 대한 폭행은 안 된다. 응급실 내 폭행은 본인과 다른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간접적인 살인행위"라며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진료실 개선, 경비인력 충원, 직원교육, 폴리스콜 활성화, 경찰의 정기순찰 등 시스템적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박홍서 청주시의사회장도 "응급실 내 의료인 폭행은 마치 달리는 버스에서 운전사를 폭행해 모든 승객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행위"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응급실 내 의료인 보호정책이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폭력에 노출된 응급실. 언제까지 이렇게 놔둬도 되는 걸까요. 인식 개선은 물론 의료인들에게 안전한 진료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는 환자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현장에서 의료인을 폭행한다는 것은 진료 기능의 마비에 따른 내원 환자의 추가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응급실 내 폭력은 명백한 국민 건강권 훼손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응급실 의료인 폭력을 무겁게 처벌하는 관행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이주현 기자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정보와 흥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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