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 칼럼] 전통시장은 스토리를 먹고 산다
[윤상원 칼럼] 전통시장은 스토리를 먹고 산다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6.10.24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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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유원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

[윤상원 유원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교수] ‘모처럼 시장에 가보면 / 시끌벅적한 소리와 / 비릿비릿한 내음새, /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들의 / 냄새와 소리들, / 별로 살 물건 없는 날도 / 그 소리와 냄새 좋아 / 시장길 기웃댄다.’(나태주 ‘시장길’)

전통시장의 현현(玄玄)한 모습이 느껴지는 시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삶이 힘들고 팍팍할 때면 전통시장에 가는 습관이 있었다. 시장의 매력 때문이다.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한 전통시장은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다. 눈이 즐거웠고 마음이 설렜다.

“잡숴봐” “먹어봐” “죽여줘”를 연신 외쳐대는 목쉰 약장수 아저씨의 너스레에 웃음보는 저절로 터졌다. 그 웃음은 최고의 보약이었다. 떡 장사 할머니가 따끈한 가래떡을 큼직큼직하게 썰어, 지나가던 아주머니 입에 듬뿍 넣어주시는 정겨움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늘 즐거웠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서 피어난 웃음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났다. “떨이, 떨이” 소리는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인들의 달콤한 외침이었다. 상인들의 말투에는 절실함과 성실함이 풍겼다. 그 시간을 노리는 손님들은 기다림이 즐거움이었다. 이처럼 전통시장은 매일같이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졌다.

 

역사 깊은 전통시장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소소한 생활용품부터 다양한 액세서리, 약재, 의류, 술, 농수산물, 축산물, 만병통치약(?) 등 없는 것 없는 만물시장이었다. 물건값 흥정에 시끌벅적한 분위기, 삶의 애환이 녹아든 구릿빛 얼굴의 사람들, 흰 연기를 내뿜는 각종 뜨거운 솥 등은 한국 전통시장의 멋이자 자유분방한 풍경이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장터 식당에 모여 안부와 소식을 나누고, 특별한 정보나 소문을 안주 삼아 회포를 풀었다. 전통시장은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상인들로부터 돈 욕심 부리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배려정신도 배웠다. 배워야 할 세상의 지혜가 넘쳐났다.

사람들이 전통시장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수 상품의 집합소인 백화점이나 편리함의 대명사 격인 대형마트 보다는 전통시장의 고유한 멋과 삶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구수한 이야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변화무쌍하고 무미건조한 사회일수록 전통시장만이 갖는 다양성과 서민들의 온정을 만끽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강렬하다.

과거 전통시장은 상거래의 중심지이면서 문화놀이의 장이자 만남의 터전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딴판이다. 상거래 장소로서의 기본적 역할마저 못 하는 전통시장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소비 패턴의 급격한 변화로 전통시장의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주차 공간 및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대형마트는 인기다. 젊은 세대나,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전통시장은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 아니다.

오래전에 전통시장 살리기 특별법도 제정됐으나 시원찮다. 보다 못한 정부와 각 지자체가 많은 예산을 들여 전통시장을 살리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시장 안에 고객 안심 쉼터 공간 조성, 무료 배송센터 운영, 전통시장 내 명소 지정, 상품권 이용 확대, 상인 아카데미 운영, 이벤트광장 및 야시장 개설 등은 단기처방에 불과하다.

쇠퇴해가는 전통시장은 다시 살아 숨 쉬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전통시장은 민생경제에 온기를 퍼뜨리는 아랫목이며, 단순히 식재료나 생필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전통과 문화가 피부로 느껴지는 접점임을 강조한다. 전통시장은 지역경제 생태계의 핵심으로서 우리 사회의 높은 관심을 받아야 하는 서민경제의 씨앗이 분명하다. 이런 전통시장을 토속적인 오감(五感)이 어우러진 소통과 어울림의 장으로 육성 발전 시켜야 할 사회적 책임은 분명하다.

민생경제의 텃밭인 전통시장의 활성화는 국가적인 과제다. 백화점 닮아가기가 아닌 창의적인 콘텐츠 발굴은 유용한 처방이 될 것이다. 전통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향토적 이미지와 특유의 스토리들은 최고의 아이템이다. 각 지역의 전통시장이 풍기는 이색적인 특색,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상인들의 흥정소리, 오랜 세월의 흔적의 때가 낀 소소한 물건들, 별미(別味)의 먹거리들, 오직 그 자리만 고집하면서 억척스럽게 장사해온 사람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훌륭한 스토리 감이다.

스토리는 흥미롭고 에너지가 있고 힘이 있다. 살아서 꿈틀거리고 천리만리를 넘나들며 소식을 전하고 감동을 전한다. 스토리는 인간의 감성 자극과 함께 마음을 움직이는 탁월한 수단이다. 생생하고 재미있는 스토리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며,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이다. 스토리를 담은 상품들은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전통 시장에는 손주들이 반해버린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는 널려있다. 세계인을 감동하게 할 최고의 스토리 감이다. 전통시장의 특화된 상품은 스토리라는 날개를 달아야 제대로 팔린다. 상품에 담긴 스토리를 팔자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이야기를 ‘약보다 더 이로운 것’이라 했다. 역동적인 전통시장, 그런 전통시장에서 살아 숨 쉬는 스토리는 새로운 상품으로 재탄생 된다. 문제는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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